바로크 미술은 르네상스의 조화로운 이상에서 벗어나 극적인 표현과 화려함을 추구한 예술 양식으로, 기원후 1600년경부터 기원후 1750년경까지 약 150년간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는 강렬한 빛과 그림자, 역동적 구도, 감정적 깊이를 특징으로 하며, 종교 개혁과 절대 왕정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했습니다. 바로크 미술은 건축, 회화, 조각에서 화려한 장식과 드라마틱한 효과를 통해 관객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바로크 미술을 연대별로 탐구하고, 동시대 한국의 역사와 미술품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1. 초기 바로크 (기원후 1600년 ~ 기원후 1650년)
바로크 미술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종교와 감정의 강렬함을 강조했습니다.
- 카라바조: 성 마태의 소명 (기원후 1600년)
카라바조(Caravaggio)의 "성 마태의 소명"(기원후 1599년~1600년)은 극적인 빛과 그림자(키아로스쿠로)로 현실적 인물과 감정을 묘사했습니다. 이 작품은 바로크 회화의 시작을 알리며 종교적 몰입을 유도했습니다. -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황홀 (기원후 1652년)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조각 "성 테레사의 황홀"(기원후 1647년~1652년)은 대리석으로 감정적 극치를 표현했습니다. 천사의 화살에 찔린 성녀의 표정과 역동적 구도는 바로크 조각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기원후 1631년)
베네치아의 이 성당(기원후 1631년 착공)은 발다사레 롱게나(Baldassare Longhena)가 설계했으며, 돔과 장식적 요소로 바로크 건축의 화려함을 구현했습니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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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성기 바로크 (기원후 1650년 ~ 기원후 1700년)
바로크 미술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며 절대 왕정과 가톨릭의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 루벤스: 마리 드 메디치 연작 (기원후 1625년)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마리 드 메디치 연작"(기원후 1622년~1625년)은 프랑스 왕비의 삶을 화려한 색채와 역동적 구도로 묘사했습니다. 풍만한 인체와 신화적 요소는 바로크 회화의 풍요로움을 보여줍니다. - 베르사유 궁전 (기원후 1661년)
루이 14세가 기원후 1661년 착공한 베르사유 궁전은 르 보(Louis Le Vau)와 망사르(François Mansart)가 설계했습니다. 거울의 방과 정원은 절대 왕권을 상징하며, 바로크 건축의 웅장함을 극대화했습니다. - 렘브란트: 야간 순찰 (기원후 1642년)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의 "야간 순찰"(기원후 1642년)은 네덜란드 바로크의 걸작으로, 빛과 그림자로 군중의 움직임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습니다. 이는 세속적 주제에서도 바로크의 드라마틱함을 보여줍니다.
3. 후기 바로크 (기원후 1700년 ~ 기원후 1750년)
바로크 미술이 로코코로 전환되며 장식성과 세속적 화려함이 강조되었습니다.
- 프랑수아 부셰: 목욕하는 디아나 (기원후 1742년)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의 "목욕하는 디아나"(기원후 1742년)는 부드러운 색채와 관능적 주제로 후기 바로크와 로코코의 경계를 보여줍니다. 프랑스 귀족의 취향을 반영한 세속적 작품입니다. - 트레비 분수 (기원후 1762년)
로마의 트레비 분수(기원후 1732년 착공, 기원후 1762년 완공)는 니콜라 살비(Nicola Salvi)가 설계했으며, 극적인 조각과 물의 흐름으로 바로크 건축의 마지막 화려함을 보여줍니다. - 바흐 성당 장식 (기원후 1720년경)
독일 드레스덴의 프라우엔키르헤(기원후 1720년경 착공)는 조지 바흐(George Bähr)가 설계한 후기 바로크 건축으로, 돔과 장식적 인테리어가 특징입니다.
4. 한국의 역사와 미술품 (기원후 1600년 ~ 기원후 1750년)
바로크 미술이 발전한 약 150년 동안 한국은 조선 중기를 거치며 외세의 침략과 문화적 전환을 경험했습니다.
- 조선 중기의 혼란과 회복 (기원후 1600년 ~ 기원후 1650년)
기원후 1592년 임진왜란과 기원후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며 조선은 일본의 침략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기원후 1592년)과 명량 해전(기원후 1597년)으로 방어에 성공했으나, 국력은 약화되었습니다. 기원후 1627년 정묘호란과 기원후 1636년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굴복하며 삼전도비(기원후 1639년)가 세워졌습니다.- 미술품: 거중기 (기원후 1600년대 초)
임진왜란 후 성곽 복구에 사용된 거중기는 장영실의 기술을 계승한 실용적 공예품으로, 조선의 과학과 실용 미술을 보여줍니다. - 미술품: 김홍도의 풍속화 초기 (기원후 1600년대 후반)
김홍도(단원)의 초기 풍속화는 조선 중기 백성의 삶을 묘사하며, 사실적 묘사로 바로크의 현실성과 비교됩니다.
- 미술품: 거중기 (기원후 1600년대 초)
- 조선의 문화적 안정 (기원후 1650년 ~ 기원후 1700년)
기원후 1653년 효종이 북벌을 계획했으나 실패했고, 기원후 1660년대부터 실학이 태동하며 학문적 변혁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원후 1694년 숙종이 환궁하며 경덕궁(현 경희궁)이 재건되었고, 문화가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미술품: 조선 백자 (기원후 17세기)
조선 백자는 간결한 형태와 순백의 유약으로 제작되며, 바로크의 화려함과 대조적인 절제미를 보여줍니다. - 미술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초기 (기원후 1700년경)
정선(겸재)의 초기 진경산수화는 한강과 금강산을 사실적으로 그려, 조선의 자연미와 실경을 담았습니다.
- 미술품: 조선 백자 (기원후 17세기)
- 조선 후기의 문화 발전 (기원후 1700년 ~ 기원후 1750년)
기원후 1710년대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으로 정치가 안정되었고, 기원후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진압되며 사회가 재정비되었습니다. 기원후 1740년대 실학이 본격화되며 서양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미술품: 신윤복의 미인도 (기원후 1700년대 중반)
신윤복(혜원)의 "미인도"는 조선 여성의 아름다움을 섬세히 묘사하며, 바로크의 감정적 깊이와 유사한 인간 중심 표현을 보여줍니다. - 미술품: 창덕궁 낙선재 (기원후 1745년경)
창덕궁 낙선재는 조선 후기 건축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바로크의 웅장함과 다른 소박한 미감을 드러냅니다.
- 미술품: 신윤복의 미인도 (기원후 1700년대 중반)
바로크 미술은 기원후 1600년경부터 기원후 1750년경까지 약 150년간 이어졌습니다. 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소명"(기원후 1600년), 베르사유 궁전(기원후 1661년), 트레비 분수(기원후 1762년)는 극적인 감정과 화려함으로 종교와 권력을 표현하며 근대 예술로의 전환을 이끌었습니다.
반면, 동시대 한국은 조선 중기로, 외세 침략 속에서 백자, 풍속화, 진경산수화를 통해 실용성과 자연미를 담은 독자적 미술을 발전시켰습니다.
렘브란트가 활동할 시기 한국은 임진왜란(1653년) 이 있었습니다. 서양과 동양은 참으로 다른것 같습니다.